"뭐? 류현진이 던진다고?"… 자존심 회복 신호탄 확인, 미소 속에 숨겨진 칼이 있다

"원래 예정에 없었는데…"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1차 캠프 막판 호주 대표팀과 연습경기 3연전을 치른 김경문 한화 감독은 16일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18일 마지막 자체 연습경기 일정을 설명했다. 한화는 베테랑 선수들은 모두 오키나와 2차 캠프부터 실전에 나가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었다. 호주에서는 경기에 나갈 생각을 하지 말고, 아예 오키나와 캠프에 모든 것을 맞춰놓고 몸을 만들라는 배려였다.

베테랑 선수들의 준비 자세가 워낙 철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아서 몸을 잘 만들어왔고, 코칭스태프도 그 정도 상태면 호주에서 굳이 실전을 하지 않아도 시즌 개막을 맞추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젊은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더 주며 옥석을 가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런데 18일 경기를 앞두고 이 계획이 약간 수정됐다.

팀의 핵심 투수이자 살아있는 전설인 류현진(38·한화)이 등판을 자청한 것이다. 김 감독은 "류현진이 던지겠다고 한다"면서 굳이 자청을 막지는 않았다. 그리고 류현진은 18일 경기에 나가 1이닝 동안 18개의 공을 던지며 무실점으로 몸을 풀었다.

김 감독은 18일 경기가 마무리된 뒤 "나도 처음에는 류현진이 여기서 던질 줄은 몰랐다. 다 오키나와 가서 시작하자고 이야기를 했다"면서 "그렇게 했는데 애들이 여기서 한번 던지겠다고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고맙다"는 말로 베테랑들의 준비 자세를 칭찬했다. 실제 이날 한화는 류현진을 비롯해 두 외국인 투수(코디 폰세·라이언 와이스), 엄상백이라는 네 명의 선발 투수가 모두 등판했다. 주현상을 비롯해 불펜의 베테랑 선수들도 많이 나와 공을 던졌다.

류현진의 올 시즌 성적에 큰 관심이 몰리는 가운데, 정상적인 캠프를 소화하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류현진은 지난해 계약이 늦어지면서 제대로 된 캠프를 치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잔류와 친정팀 한화 복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이 이어졌고, 2월에나 계약을 했다. 남들이 야외에서 공을 던질 때, 류현진은 실내에서 공을 던져야 했고 제대로 된 피칭은 2월 말 오키나와에서 진행했다.

컨디션을 최대한 빨리 끌어올리며 개막전 출전에 대비했고, 아슬아슬하게 이 타이밍을 맞추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오프시즌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여파가 없을 수는 없었다. 류현진은 지난해 28경기에서 158⅓이닝을 던지며 10승8패 평균자책점 3.87을 기록했다. 리그의 전반적인 타고 성향을 고려하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 대상이 '류현진'이라는 점에서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도 나왔다. 피안타율(.287)이 많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고, 류현진답지 않게 기복도 심했다. 잘 던지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가 컸다.

하지만 올해는 멀쩡하게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다. 겨울부터 몸을 잘 만들었고, 호주 캠프에서도 네 차례의 불펜 피칭과 라이브 게임에 이어 18일 실전까지 등판하며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 이제 오키나와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이닝과 투구 수를 서서히 늘려가는 단계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몸이 잘 되어 있는 만큼 이 단계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기대한다.

류현진은 밝은 분위기의 캠프를 이끄는 리더이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조언도 많이 해주고, 자신의 훈련이 아닐 때도 불펜 피칭장을 찾아 후배들의 투구를 지켜보기도 했다. 직접 엄상백의 수비 훈련을 돕는 등 캠프 곳곳에서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투수진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 자존심 회복이라는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18일 연습경기 등판에서 잘 드러났다.

한편 한화는 이날 류현진 외에도 폰세와 와이스가 각각 나란히 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정상적인 컨디션을 선보였다. 모두 빠르고 강력한 구위를 가진 선수로 올해 외국인 투수 문제를 해결할 기대주로 뽑힌다. 4년 총액 78억 원의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한 엄상백 또한 이날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네 명의 선발 투수가 든든하게 시즌 준비를 마쳐가는 셈이다.

지난해 한화는 펠릭스 페냐와 리카르도 산체스의 외국인 투수 라인업을 신뢰하며 그대로 시즌을 시작했다. 과감한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하지만 두 선수가 부진과 부상으로 고전하며 시즌 초반 김이 빠졌다. 한화는 올해 와이스와 폰세가 지난해 외국인 투수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를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류현진이 지난해보다 나아지고, 엄상백이라는 10승 투수가 가세했다. 선발진에서 상향의 여지가 많다. 이들이 추가하는 승수는 그대로 한화의 추가 승수로 이어진다. 포스트시즌에 가기 위해 반드시 이들의 힘이 필요하다.

한승혁(2이닝) 김범수(1이닝) 박상원(1이닝) 이태양(1이닝) 주현상(1이닝)이라는 불펜의 주축 선수들도 이날 모두 등판하며 그간의 실전 갈증을 풀었다. 불펜은 지난해 위용에서 이탈자가 없고, 오히려 선수층이 더 탄탄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가 가을야구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는 하지만, 적어도 마운드에서는 그 해법이 보이고 있다. 호주 캠프를 마무리한 한화는 19일 오후 귀국행 비행기를 탄다. 도착 후에는 한국에 체류하지 않고 20일 곧바로 오키나와행 비행기로 환승해 2차 캠프에 들어간다.